
외관 설명
비앙카는 늘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수하고 단정한 차림이었다. 누군가의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소녀의 마음을 닮아 간소하고 무난한 차림새지만, 빛이 바래고 곰삭은 옷일지라도 소녀는 언제나 정성을 들여 경건할 정도로 곧고 바르게 차려입었다. 그러나 사람의 눈길을 피하고 싶은 절절한 마음과 달리, 구름이 내려 앉은 것처럼 성성한 백발은 언제나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붙잡았다. 숱이 많은 머리카락은 소녀가 고개 숙일 때마다 얼굴에 긴 그림자를 그렸고, 빛이 사라진 곳에서야 겨우 엷은 금빛을 띄는 머리카락은 굵게 굽이치며 날개뼈를 폭신하게 덮었다. 앞머리 없이 이마의 왼쪽부터 땋은 머리카락은 오른쪽 귀까지 줄을 이었다. 땋은 머리카락이 끝나는 지점에는 제 눈처럼 노란 리본을 나비모양으로 곱게 묶어 마무리지었다.
노인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아래 숨겨진 얼굴은 아직 세상을 알기에 턱없이 앳되었다. 볼록한 이마와 둥근 콧망울, 곧게 뻗은 눈썹 아래 자리잡은 둥근 눈매. 무엇 하나 모난 것 없이 정돈된 얼굴은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눈꼬리는 여덟 팔(八) 자처럼 아래로 향했고 옅은 쌍커풀 아래 자라난 속눈썹도 땅을 향해 있어, 눈에 그늘을 드리울 뿐만 아니라 곧잘 따가울 정도로 눈알을 간지럽혔다. 눈썹에 찔려 젖어있는 날이 많은 눈동자는 따뜻한 노란색. 자그마한 입은 굳게 닫혀있고, 꽃이 피고 지는 주기에 맞추어 입술이 부르텄다. 입술뿐만 아니라 얼굴빛 역시도 꽃이 필 때는 화사하게 혈색이 돌았지만, 눈이 내릴 때면 하얗게 질리곤 했다.
소녀는 입이 짧은 탓인지 또래보다 한 뼘보다 조금 모자란 정도로 작아서, 겨우 4피트 3인치, 약 130c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 빠지지 않은 두 뺨의 젖살 때문에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몸도 또래 친구들보다 작았다. 또래보다 더딘 성장 탓에 조금 크게 받았던 옷들 모두 몇 년이 지나도록 길게 입을 수 있었다.
기타 설정
비앙카는 무던한 아이였다. 또래 아이들과 뛰어놀며 시끄럽게 구는 일 없이 조용한 아이였지만, 선생님들은 비앙카의 생활에 있어 혹여 따돌림이 있는 것은 아닐까 따위의 걱정을 하지 않았다. 비앙카는 보육원에서의 모든 일이 익숙한 듯 사고를 친 어린 동생들의 뒷수습을 자연스레 도왔고, 다투는 동생들의 화제를 돌리는 것도 소녀에겐 가벼운 일이었다. 소녀는 언제나 보육원 친구들에게 따뜻하게 웃어보였고, 누구에게나 관대했다. 슬픔을 겪은 보육원 친구에게 아끼던 쿠기 한 조각을 건네어줄 줄 아는, 그런 따뜻함이 소녀를 구성하는 듯했다. 그렇기에 보육원 안에서 크고 작은 슬픔을 겪은 아이들은 대부분 비앙카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갖지 않았다. 그만큼 커다란 애정을 갖고 있으면 사람을 퍽 좋아할 만도 했지만, 비앙카는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오히려 사람이 무서운 아이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를 피하며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황급하게 얼굴을 붉히며 눈을 피하는 소녀에게 이유를 물으면, 부끄러운 듯 작게 웃으며 어색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답했다.
제법 나이가 많은 편인 소녀는 어린 동생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고, 놀아주며 글자를 가르쳐주곤 했다. 그러다가 동생들이 자라 친구와 노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 나이가 되면, 비앙카는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따라서 나이차가 제법 나는 친구들은 비앙카에게 글자를 배우거나 시간을 보낸 기억을 갖기도 했지만, 소극적인 비앙카와의 기억이 그리 크게 기억에 박힌 아이는 아마도 없으리라.
은은하게 비추는 비앙카의 배려나 애정은 결코 크게 드러나지 않아서, 보육원 내의 아이들은 비앙카의 존재를 크게 인식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홀로 슬픔에 잠겨있을 때 소녀가 따뜻한 말과 행동을 건네어주리란 믿음은 보육원에서 자란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을 것이었다. 보육원 아이들에게 비앙카는 좋은 놀이 상대는 아니었지만, 늘 다정한 언니이자 동생이었다. 복작복작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는 비앙카를 걱정하는 아이들도 몇 있었지만, 비앙카의 숫기 없는 모습은 영 고쳐질 생각을 않았다.
비앙카는 보육원에서 오래 지낸 축에 속했다. 전해 듣기로는, 새하얀 눈이 내리던 겨울날에 진녹색 담요에 싸여 보육원 앞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첫 생일도 맞이하지 않았을 정도로 갓난 아이었으니, 나고 자라며 바라본 비앙카의 세계는 좁다란 보육원이 전부였다. 보육원 밖에서의 생활을 기억하지 못하는 비앙카로서는 가족과의 추억이 있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고, 조금이라도 그리움과 궁금증을 충족시키기 위해 선생님께 자신이 이곳에 온 날을 캐물었다. 제 부모가 주었을 마지막 선물인 진녹색 담요가 보물이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비앙카는 소녀가 가진 것 중 가장 낡았을 진녹색 담요를 껴안으며, 바깥에서 엄마의 품에 안겨 이곳에 오기까지의 길을 상상하며 그리워하는 것이 몇 되지 않는 취미였다.
그러나 빌리를 만날수록 바깥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조금씩 짧아졌다. 빌리가 보육원에 대한 애정을 보일 때마다, 비앙카 역시도 빌리의 시선을 따라 보육원의 따스한 구석들을 찾아냈다. 게다가 빌리는 뜻밖의 자유를 비앙카에게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빌리가 보육원의 이름을 제 성씨로 삼는 것을 보며, 비앙카는 자신의 성씨, 생일 등을 좋을대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렇게 돌아본 제 뿌리는 텅 빈 만큼 꾸며넣을 수 있는 공간이 넓었고, 소녀에게 더이상 제 원래 성씨와 생일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졌다. 생일은 자신이 보육원에 온 1월 19일로 삼고 비앙카는 빌리를 따라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성씨로 붙이고 싶어서, 최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찾아다니던 중이었다.
보육원에서 제법 오래 지낸 아이라면, 8년 전 사망한 비앙카의 쌍둥이 여동생을 어렴풋이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여동생의 죽음은 비앙카에겐 커다란 일이었겠지만, 그 아이는 언제나 말 없이 어두운 아이었기에 사람들의 기억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 이후로 비앙카는 말수가 조금 줄었고,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잊혀진 여동생을 아는 친구들은 이제 제법 적어졌다.
비앙카 | 14 | F
관계란
바깥에 대해 알려주는 선생님
첫 만남부터 스퀘어는 비앙카의 눈에 띄었다. 여동생과 자신의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쌍둥이 형제. 비앙카는 처음 보육원에 온 친구들이 으레 그러하듯 스퀘어에게도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기에 오히려 자신이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비앙카는 그의 쌍둥이 형제가 대부분 도와주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며, 종종 그가 혼자 있을 때만 그에게 작은 도움을 건네었다. 이후 스퀘어가 훌륭하게 보육원의 일원이 되었을 때에는 그동안 작은 눈발처럼 쌓인 친분이 퍽 두터워져 있었다.
게다가 비앙카는 바깥의 추억을 가지고 들어온 스퀘어에게 처음 본 순간부터 궁금한 것을 곧잘 물었고, 그때마다 성심성의껏 답해주는 그에게 커다란 상냥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상냥함은 말을 붙일 때마다 자신을 외면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비앙카는 종종 소소한 질문들을 그에게 가져가곤 했다.
스퀘어 레드포드